페미뷰 2023-11호 (2023년 9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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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정치 뉴스에 ‘이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부터 시작해 지금이 2023년이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자유민주주의vs반공, 철 지난 색깔론/이념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페미뷰 이번 호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 자유민주주의vs반공 이념논쟁이 가진 효과가 무엇인지 뜯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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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개념부터 짚고 갈게요.
✅ 자유민주주의 = 자유주의+민주주의
✅ 자유주의: 서구의 시민혁명을 통해 나타난 봉건적 공동체의 구속과 절대왕정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
✅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스스로 힘을 행사하는 정치 제도, 사상.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을 추구.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 자유가 국가 권력에 의해 침해되면 안되기 때문에 개인의 기본권(양심·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국가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분할하는 권력 분립 제도, 권력 기관의 구성과 정치권력 행사는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법치주의 등이 자유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해요.
자유민주주의는 서구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탄생하여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어요. 그러나 냉전을 거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이 사회주의권의 민주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강조하며 반공적 의미로 사용해왔습니다.
개인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박탈하며 권력 분립 원칙을 와해시켰던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전문에도 “자유민주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 공화국을 건설”이라고 나와있어요.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는 냉전체제에서 본래 태생적 의미와 달리 반공 이념 전쟁을 위해 적극 사용되어 온 역사가 있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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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할 때마다 반국가세력, 종북 주사파, 전체주의, 북한 공산집단 등의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2022년 10월,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간담회 관련기사)
“종북 주사파들이 북한 인권 얘기가 나오면 철저하게 막는 것도 북한 인권이 곧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신년 업무보고 관련기사)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 (2023년 4월, 4.19혁명 기념식 관련기사)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 (2023년 6월,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 관련기사)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중략)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관련기사)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제일 중요한게 이념이다“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관련기사 )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조작, 선전·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 (8월 29일, 민주평통 간부위원과의 대화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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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현재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을 반-자유민주주의 세력, 반국가세력, 종북 주사파, 북한 공산집단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에서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는 각종 규제철폐, 부자 감세, 노동자 탄압으로 나타나고 있죠.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세력을 싸잡아 '종북몰이'하여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행세"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자유민주주의 주창만이 '진짜 민주주의'이고 본인에게 비판적인 세력의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로 대립시키는 것이죠. 이와 같이 "거짓 선동, 날조", "허위선동과 조작, 가짜뉴스와 괴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합니다. 정부 정책과 기조에 비판적인 언론의 목소리는 '가짜'이고 '비과학적'이라고 프레이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한국-미국-일본의 경제-안보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념에 너무 경도된 나머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어서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있어서 그들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대외 동맹 체계를 굳건히 하여 ‘퍼주기 외교’를 통해서라도 이들의 인정을 받아 국내에서의 무능을 감추는 효과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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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자유민주주의vs반공 이념 전쟁을 통해 일부 정치인들은 권력을 연장하고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학살을 당하기도 했고, 평화와 평등,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살아있고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세월호 평화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2023년입니다.
이념 대립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나머지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정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을 외면하고,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이, 시민의 건강보다는 외교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유민주주의vs종북이라는 낡은 이념 구도의 또 다른 문제는 '종북몰이', '빨갱이' 낙인찍기와 같은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승인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강조하는 국가 안보와 경제의 근간은 이성애 핵가족이지요. 또한 '반공'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는 전쟁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이로써 우리의 일상에 전통적 남성성과 여성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게 되지요. 따라서 이와 같은 이념 전쟁은 가부장제가 발현되는 최고의 조건이 됩니다.
가부장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가족과 국가의 소유가 되길 거부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종북'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과거 호주제폐지 운동 때부터 최근까지 이어져오는 소위 '종북페미'와 같은 표현은 페미니즘이 진보진영과 궤를 같이하고 이들을 적으로 몰아 비판하기 위한 프레이밍인 것이죠. 페미니즘이 실제로 진보진영에서 어떤 비판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어떤 주장을 하는지는 상관없고 그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어지럽히는 세력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온 성평등 정책을 지우고 퇴행시키고 여성을 가족 내 ‘어머니’로만 위치시켜 육아와 돌봄 정책만이 여성정책이 되게 만들어버립니다.
또한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평등과 권리를 위한 주장들은 이 사회와 체제를 위협하고 갈등을 야기시키는 존재로 이야기하며 이들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시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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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주의, 복지국가의 원리, 국제 평화주의 등과 함께 헌법의 기본 원리이기도 합니다. 헌법의 기본원리라고 하더라도, 반공 전선을 긋기 위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 볼 필요는 있어요. 헌법이 국가의 기본법이라고는 하나 완전한 것은 아니고, 87년 이후의 세계를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강조해 사회 불평등 및 분배 정의와 거리를 둡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공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분배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어떤 가치가 우선되어야 하는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 심화시키는 군사주의와 군사주의를 위한 가부장제 종속의 문제까지 나아가 다뤄야 해요. 국가는 국민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구조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 배제되는 이들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자유민주주의vs반공으로 권력집단에만 이익이 되는 정치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일상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정치를 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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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의견 참고해서 더 좋은 소식지로 찾아뵐게요!
다음 호는 9월 19일에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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